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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에 놓인 작은 그네가 있습니다. 그건 제가 아직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시점에 저희 아버지께서 저를 위해 미리 설치 해주신 놀잇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은 외딴 지형의 집이었지만.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남 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며 아버지의 부재가 생겼을 무렵에는 그네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구석에 홀로 자리 잡은 그네를 보면 가슴이 괜히 시큰거려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무로 만들어진 그네는 비와 눈을 맞으며 페인트 칠은 점점 벗겨져 예전의 빛깔을 완전히 잃고 칙칙한 색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저의 어머니도 따로 관리를 해주지 않으셨는데. 그렇다면 제 어머니도 저와 비슷한 마음을 지녔다는 뜻이 돠겠네요. 외딴 카페에서 즐길거리가 사라졌지만 괜찮았습니다. 그때 제 아버지의 공백을 채워주려는 듯 신기한 사람이 저희 집에 머무르게 되었거든요. 이름은 아이카와 하지메. 제 소중한 가족이었습니다.

 

그 분의 분위기는 항상 묘했습니다. 꼭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다온 듯한 이질감이 어릴 적의 저에게도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은 늘 제게 웃어주고. 상냥했으며. 제가 뭔갈 하나 알려준다면 신기한 듯 멍하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이 점이 재밌기도 했고. 또 과묵한 모습이 어린 맘에 멋져 보이기도 해 제법 졸졸 따라다니곤 했죠. 내심 다른 누군가를 겹쳐 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시절이니 아닌 척 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초반엔 어머님도 많이 힘들어하시기도 했고. 괜히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은 맘에 내색 한 번 안 하기도 했고요.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하지메씨의 존재는 제 어린 시절의 큰 조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기쁘다면 괜히 뿌듯했고. 기운이 없다면 미숙한 말재주 로라도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한 번 크게 들썩이고 난 이후 당신이 크게 상심한 듯한 모습을 보였을 적에. 이상하게도 아무런 말도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크게 상심하신 어머니의 곁에서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려 노력했던 것처럼. 그때의 저도 당신의 옆에서 큰일이 아예 없었다는 것마냥 생활했던 제 모습을 보고. 당신은 조금이나마 괜찮아지셨을까요?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 조금 지났을 무렵의 일 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의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테이블 위에서 짐을 풀며 입을 열었습니다. “저 앞의 그네는 뭔가요?”

저는 마침 당신의 장바구니를 받으러 마중을 나갔기에. 당신의 질문에 바로 답변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직 엄마의 뱃 속에 있을 때. 저희 아빠가 설치해 준 그네에요.”

“그랬지? 막 퇴근해서 땀 범벅인 너희 아버지랑 같이 그네를 타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물론! 아직도 내 눈엔 우리 아마네는 아직 어렸을 때 그대로로 보이지만~” 투정 부리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를 바라보니 어머니는 제 볼을 장난스럽게 꼬집으며 웃으셨고. 당신도 비슷한 웃음소리를 흘렸습니다. “정말이지, 어린애 취급 하지 말아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신의 입이 열리는 게 더 빨랐죠.

“고장난 건가요?”

“응? 아니, 아마 사슬이 조금 녹슨 것 빼고는 멀쩡할 거예요.”

“아하….” 그리 대답하시고선. 당신은 저를 바라봤죠.

“아마네. 같이 그네로 가볼까?”

당신의 제안은 흔치 않은 것이었기에. 그때의 저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이 그걸 제안한 진짜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군요. 아마 예상 하건대 문득. 생각이 나서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말하고 나서 당신의 표정이 조금 놀란 듯 보였거든요. 분명 앞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없는 척 버려져 있는 저 그네를 보기가 힘들었을 거라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요.

앞마당으로 나왔을 때 그네의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했습니다. 칠은 조금 벗겨졌지만. 나무가 무척 좋은 나무였는지. 잔가시는 거의 없었고. 녹이 슬었다는 사실은 동네 놀이터에 있는 그네 정도의 상태로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앞마당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마네의 아버지가 네게 선물한 거잖니.”

저는 그네에 고정된 시선을 돌려 어느새 제 곁에 시선을 맞추고서 앉아있는 당신과 눈을 마주했습니다.

“같이 고쳐볼까?”

“네!” 저는 그렇게 대답했고. 제가 활짝 웃은 것만큼 기쁜 듯 웃으시며. 제게 손을 내밀어주셨습니다.

저희 둘은 손을 꼭 맞잡고서 상점가에 들러 녹을 제거하는 스프레이와 윤활제. 제가 좋아하는 색의 페인트. 커다란 붓을 한 아름 사서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둘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셨지만. 그 미소엔 하지메씨. 당신을 향한 고마움이 담겼다는 것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네를 고치는 건 카페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께서 개인 사정으로 가게 문을 일찍 닫고서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아직 노을이 지고 있을 때 저희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녹이 슨 사슬에 녹 제거제를 뿌리고. 사용하지 않는 천으로 닦아내니 전보다는 확실히 사슬이 깔끔해졌고. 불투명한 젯소를 골고루 발라 저희가 새로 올릴 색을 더 깨끗하게 올리기 위해 칠했습니다 날이 늦어 젯소를 바르고서 집으로 들어갔지만. 그 날 만큼 내일이 기다려져 가슴이 두근거리는 날은 놀이동산을 처음 갔을 때 말고는 거의 처음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다음날은 저희 가족이 모두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서 나머지 작업에 들어갔었죠. 제가 좋아하는 분홍이나 연한 물색을 칠하고. 저희 어머니는 그네의 뒤에 예쁜 꽃을 그려 넣으며…. 그 s라 가게에 들어오시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저를 보시면 “바깥의 그네가 많이 예뻐졌구나.” 하고 웃으시며 저를 바라봐 주셨고. 저는 부끄러운 맘에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처음으로 셋 이서 함께 힘을 합쳐 무언갈 고친 경험이었기에. 제겐 무척이나 의미가 깊었답니다. 페인트가 다 마르고 나서는 어머니와 함께 타기도. 당신과 함께. 그리고 그네에서 틈만 나면 시간을 보냈고. 전처럼 바깥의 그네를 없는 척 하며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비가 오고난 뒷면 괜히 몇 번씩은 물기를 닦아줬고. 녹이 슬면 녹 제거제를 뿌리기도 하며. 나름대로 괸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날들이 흐르고. 제가 어른이 됐을 무렵. 당신은 홀연히 모습을 감췄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걱정이 되셨는지 저화 함께 당신의 행방을 찾았지만. 이내 그만두셨습니다. 아마 어머니에게 만큼은 편지를 남겨주셨던 것이겠지요. 제게는 알려줄 수 없는 이야기였나요? 당신이 보기에는 아직 저는 어린아이였기에 차마 말해줄 수 없던 것이었나요. 그때 제 감정을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분했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었겠어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아서 많이 화가 났었고. 시간이 흐르자 슬퍼졌으며. 끝내는 미련이 남아 당신의 빈자리를 괜히 바라만 보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생각하지만. 글쎄요. 아직도 저는 당신이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되고. 많이 보고 싶으며. 또 당신과 이제는 삭아 없어져 버린 그네를 보며 “많이 버텼다.” 말하며 농담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당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얼굴엔 잔주름이 늘어나고. 손의 피부가 조금씩 거칠어지는 것이 보였는데. 저희와 함께 있어 온 당신은 늘 한결같았으니까요. 그래서 더 말하기가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메씨. 사람이 아니죠?” 라고요. 이런 농담을 저희가 막 친해졌을 무렵에 주고받았나요? 당신은 꽤 많은 것을 떠안은 얼굴로 제 대답을 들어주셨죠. 그래서, 저 말을 꺼내면 당신은 상처입은 얼굴로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 무서워 말을 꺼냈습니다. 지금이라도 말해볼까요? “그래도 하지메씨는 하지메씨니까. 늘 저희의 가족임은 변함이 없어요.” 그리고, 부끄러우니 인사말을 붙이죠. “오늘 많이 피곤 하셨을 텐데. 들어가서 쉬세요. 나머지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아무런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지게 될 줄 알았다면. 입을 열어볼걸 그랬어요. 그랬다면 이렇게 긴긴 미련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그것 때문에 크게 괴롭지는 않았어요. 점점 괜찮아지고. 받아들이며. 이별을 더 이상 제 탓 으로 돌리지 않고서, 당신에게도 한 차례의 여행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 하기로 했답니다. 비록 다시 만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저에게는 저만의 여행길이. 하지메씨에게는 하지메씨만의 여행길이 있던 거겠죠.

하지메씨. 저희 어머니는 당신이 있어서 무척 든든하고. 고맙다고 전해 달라 하였어요. 코타로 삼촌은 툴툴대다가도 당신을 걱정했고. 저와 자주 이야기를 나눠줬답니다. 가끔씩 마주쳤던 히로세씨, 타치바나씨, 카미죠씨 모두 당신의 안부를 걱정하며 부디 행복하기를 빌어줬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로요.

 

제가 당신을 그리며 괜한 세월을 보냈을거라 걱정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미련하다면 미련하다고 부를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을 지닐 수 있던 이유는 하지메씨와 함께 자라온 저이기에 할 수 있던 생각이었고. 이런 마음이 가장 저 답다는걸, 이제는 모르지 않으니까요.

위태롭던 저희 모녀에게 불쑥 등장해 저에게 키다리 아저씨처럼 애정을 주고서 홀연히 사라진 당신을 이제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제 여행길을 말없이 응원 해준 것처럼. 저도 하지메씨를 그렇게 배웅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안녕, 하지메씨. 당신의 앞날이 부디 행복하기를.

 

20XX년. 쿠리하라 아마네 올림.

특촬 플레이리스트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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