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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설정 날조가 있습니다.

* 작품 관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다.

 

카도야 츠카사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붕이 군데군데 뚫려 하늘이 훤히 보이는 폐공장 안, 어스름한 하늘 사이로 빗방울이 후드득 쏟아졌다. 그것을 멀거니 올려다보던 그가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잠을 잤던가, 나. 그에 부응하듯 어깨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자요?”

“…….”

 

츠카사가 나츠미를 내려다본다. 움찔거리며 그로부터 몇 발짝 뒤로 떨어진 그녀가, 한편으론 고집스러운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츠카사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대꾸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 모양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답을 재촉하는 것인지,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자두지 않으면 힘들 거예요, 츠카사 군.”

“….”

“언제까지 안 자려고요?”

“…… 이제는 환각도 내 잠을 다 걱정하네. 걱정 참 고마워, 나츠미캉.”

 

비아냥이 끝나기 무섭게, 나츠미가 눈썹을 세웠다. 그녀와 잠시 눈싸움을 하던 츠카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양새를 바라보던 나츠미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더러 들으라는 듯이.

 

“… 이래서 잠을 자라는 거예요.”

“자다가 습격받을 일 있나.”

“오늘은 더 안 올 걸. … 그 사람들도 피해를 많이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자.”

 

폐공장의 기둥 하나를 지지대 삼아 기대앉은 나츠미가 제 옆자리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앉으라는 뜻이고, 이를 츠카사가 모를 리 없었다. 단지 자연스레 자신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저것이 진짜 나츠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거슬릴 뿐이지. 왜, 알잖는가. 히카리 나츠미는 지금 그와 함께하고 있지 않다. 그가 그곳을 나왔으므로…….

 

“얼른.”

“… 너 진짜 짜증 나.”

“네, 네. 츠카사 군이 본인을 싫어한다는 건 잘 알겠어요.”

 

카도야 츠카사는 결국 입을 다무는 대신, 순순히 그 옆에 앉는 것을 택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나츠미가 물었다. 목소리가 작고 차분했다. 꼭 그가 아는 진짜 나츠미처럼.

 

“사진관은 왜 나왔어요?”

“시작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지 마.”

“하지만 저는 진짜 제가 아니잖아요? 츠카사 군이 지금 생각하는 것밖에 말하지 못해요.”

“내가 생각을 그만하는 게 정답이었군.”

“짜증 내지 말아요. 츠카사 군도 기억하잖아요. ‘저’에게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나온 거.”

 

그리고 카도야 츠카사는 다시 입을 다문다. 어느샌가 비는 그치고, 회색 하늘에는 구름만이 점점이 떠 자칫 심심했을 하늘 위로 양을 몇 마리 수놓고 있었다. 하늘 아래 폐공장, 그리고 그 안에 기대앉은 자신과 전부 안다는 양 조잘거리는 환각 하나……. 잠을 좀 자둘걸. 카도야 츠카사가 생각했다. 그럼 이런 망할 일도 경험을 안 했지.

 

“지금 자둘걸, 하고 후회하고 있죠.”

“…… 알면 자게 조용히 해줄 수는 없어?”

“츠카사 군이 원한다면야.”

 

옆에서 옷자락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잦아들었다. 눈을 감은 츠카사는 애써 잠을 청했다. 동이 트기까지는 몇 시간이 채 남아있지 않았고, 저것의 말마따나 그는 잠을 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날이 밝으면 또 누가 습격할지 몰랐다. 그는 아직 죽어서는 안 됐다. 아직은. 하지만 저것에게 이유를 말하지 못할 건 또 어디 있겠나. 문득 오기가 생긴 모양새로, 그가 입을 열었다. 다만 한숨이 미약하게 섞인 목소리가 샜다.

 

“…… 너한테 얘기하지 못한 건 이유가 있었어.”

“… 그래? 무슨 이유?”

“… 그것까지 말해야 해?”

“입 밖으로 말해두면 좋죠.”

“…… 위험할까 봐.”

 

히카리 나츠미는 보통 사람이다.

 

이 말인즉슨, 그녀는 가면라이더가 아니고, 괴인은 당연히 아니며, 하다못해 초능력자도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나 2009년을 기점으로 그녀가 겪은 일을 떠올려보자. 세계 멸망의 전초, 괴인의 습격, 도망, 도망, 그리고 도망과 죽음과 납치…….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을 보라. 이제까지 만났던 모든 가면라이더가 그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세계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츠카사가 한참의 침묵 끝에 말을 이었다. 자기 자신과 한 다짐을 상기시키려는 사람 같았다.

 

“… 어차피 좋든 싫든 언젠가는 그곳에서 나와야 했어.”

“하지만 네 집이라며?”

“나츠미캉 흉내를 낼 건지, 나를 다그칠 건지, 하나만 해.”

“…… 하지만 츠카사 군의 집이라면서요?”

 

참 순순하기도 하지, 하고 김샌 생각을 하던 츠카사가 다시 생각을 이어 나갔다. 눈은 여전히 감은 채, 히카리 사진관의 외형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며…. 그곳에는 키 작은 테이블이 있다. 소파도 있고, 거실의 중앙에는 스크린이 달려 그들이 어떤 세계에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히카리 에이지로가 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들을 맞이하며 간식을 가져와 주겠다고 말하는. 그리고, ….

 

그리고…….

 

 

카도야 츠카사가 손을 들어 얼굴에 문질렀다. 그는 히카리 나츠미가 위험에 빠지지 않길 바랐다. 그러므로 그는 먼저 떠나는 것을 택했다. 이 여행은 더 이상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은 탓이다. 언제부터? 아마 그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번 죽었던 순간부터.

 

옆에서 가벼운 소음을 내며 앉아 있던 환각이 그를 불렀다.

 

“츠카사 군.”

“…… 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 몰라.”

 

츠카사가 퉁명스레 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몰랐다. 그가 계획한 건 사진관을 나오는 것까지였다. 가면라이더에게 습격받고, 그 와중 유리코란 여자애를 줍고, 파괴자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여 역으로 가면라이더를 없애고 다니다가 나츠미에게 상처를 입히고 유리코와 헤어진 것까지, 그건 그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단 소리다. 이를 두고 생각해 보면, 그래, 혼자서 떠도는 것도 참으로 못 할 짓이 아닌가? 아무리 혼자 조용하게 움직이려 해도 꼭 방해가 따라붙지. 어떤 식으로든. 츠카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생각은 죄가 없으므로.

 

“… 돌아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는데. 그리고 그만 싸웠으면 좋겠고.”

“…… 아까까진 사진관에서 나와야 했다면서?”

“생각은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잖아.”

“왜? 사진관이 네 집이어서?”

 

츠카사가 입을 다문다. 이번에는 환영도 입을 다물었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풀벌레들도 곤히 잠들었으며 오직 해만이 조금씩 깨어날 준비를 하는 시간. 새벽이란 때로 속을 토로하기 좋은 시간이어서. 잠시 머뭇거리던 츠카사가 느리게 눈을 떴다. 잠이 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탓이다. 그리곤 선선히 내뱉는다.

 

“그것도 있고.”

“또?”

“…… 네가 있잖아.”

“….”

 

카도야 츠카사와 히카리 나츠미의 눈이 마주친다. 츠카사가 그것의 눈을 올곧게 직시했다. 그답지 않다면 그답지 않은 일이다. 그는 언제고 세계를 왜곡해 보았으므로. 아니지, 세계가 그를 왜곡해 보았고 그를 제대로 본 것은 나츠미던가……. 어쨌거나 카도야 츠카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나츠미였고, 동시에 진짜 나츠미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순순히 뱉었다. 진짜 나츠미에게는 한 번도 얘기한 적 없던 것이기도 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까닥했다간 유치하게 구는 것처럼 들릴까 봐서였다. 그게 아니면 구차하게 들리거나.

 

“네가 먼저 따라오겠다고 했잖아, 나츠미캉.”

“….”

“사진관이 내 집이라며. 네가 기다려주겠다며.”

 

네가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걸 믿으니까…….

 

말이 실낱같이 흘러나오다 꺼졌다. 나츠미의 모습을 한 것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한숨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츠카사가 그것을 올려다보면 환각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모를 무언가가 그를 향해 속삭였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폐공장 천장의 구멍을 등지고.

 

“너, 이 여자애한테 죽을 거지?”

“… 흉내는 포기했나?”

“방금 건 고백 수준이었어.”

“타인을 흉내 내는 건 그닥 좋은 생각이 아니야, 너.”

 

내가 아무리 잠을 안 잤다지만……. 츠카사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어느샌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유리코가 바닥을 발끝으로 내리쳤다. 그림자 없는 바닥에는 발이 부딪힐 때마다 나야 할 특유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탁탁, 하는 그것. 살아있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그러나 그녀는 죽었기에 가지고 있지 않은. 유리코가 제 발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쉬며 츠카사를 보았다.

 

“질문에 대답해 줘. 죽을 거지?”

“…….”

“왜?”

 

유리코가 물었다. 그리고 츠카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는 히카리 나츠미에게 죽기로 했다. 해가 뜨고 나면.

 

그가 이대로 존재한다면 세계는 필연적으로 멸망의 길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가면라이더에게 죽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좀 더 정확히는, 이제까지 그가 여행해 온 세계의 가면라이더들에게. 그가 여행했던 세계의 사람들은 그에게 파괴당할 운명이므로 그가 그들에게 죽는 것은 운명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허락했다면 진작 죽었겠지, 하고 츠카사가 생각했다. 지난 전투를 돌이키며.

 

하지만 나츠미는?

 

그에게 파괴당할 운명이 아니다. 그가 파괴하고 싶은 운명도 아니다. 그가 여행한 세계의 가면라이더도 아니었고 자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가면라이더의 ‘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 단지 자신과 제 세계의 안위를 걱정해 이 모든 일에 발을 디딘 유일한 사람. 그가 돌아갈 곳이요 그가 가장 무겁게 여기는……. 그러므로 그녀는 필연이다. 이 모든 걸 끝낼, 카도야 츠카사가 선택하고 세계가 결정지은 대적자.

 

유리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애가 불쌍해.”

“……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 애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리고 다른 모든 세계도.”

“…… 바보야!”

 

유리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츠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폐공장 사이로 희미하게 햇빛이 들어온다. 아침이 찾아왔다는 의미이자 그가 기어이 밤을 새웠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가 못내 웃었다.

네게 질 시간이었다.

특촬 플레이리스트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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