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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er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세상은 이제 버그스터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다.

모든 바이러스는 진화하기 마련이지만, 그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우리와 같은 의사들 아니겠는가.

우리-라는 단어는 어감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나쁘지 않겠지.

 

그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다.

처음 가샤트를 넘겨받던 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누구보다 노력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의도한 바는 딱히 아니었지만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모든 이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을 위해 해오던 일이 딱 하나 있었다. 내가 망쳐버린 그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보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일종의 속죄처럼 여겨왔다.

 

나는 오랜 노력 끝에 크로노스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었다.

소멸한 모든 이들을 돌려놓는 것은 사에코를 중심으로 한 재생의료센터의 연구 팀의 역할이었지만, 모모세 사키, 그녀만큼은 내 손으로 돌려놓고자 했으므로.

크로노스로 변신할 수 있다면 일의 진척이 빨라질 터였으니, 상부에서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위생청에서는 나에게 맥시멈 마이티 X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했다. 아직 연구 단계였지만, 작동 매커니즘을 밝혀내지 못했을 뿐 이미 완성된 가샤트라서, 프로토 가샤트와는 달리 딱히 부작용은 없다던가. 사실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데도 멈출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그녀의 데이터를 버그스터로서 복원해냈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녀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의식을 되찾자마자 그녀는 히이로의 안부를 물었다. 너에게 어울리는 다정한 애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살짝 웃어보이며, 히이로는 잘 지내고 있으며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노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히이로가 그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곧 히이로에게 연락을 넣었다. 급한 수술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잠깐 CR로 오라고.

내가 따로 그녀의 데이터를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에, 그때까지도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왜 불러내는지도 모를 테지.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알겠노라고 답한 후 10분 정도 걸린다는 말을 덧붙였을 따름이다. 겉으로는 안하무인의 도련님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도 따뜻하다. 히이로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사키 못지않게 배려심 있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둘은 참 닮아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두 연인이 재회하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만남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뻤을 뿐이다. 그러니까 맹세하건대, 지금 내 눈이 조금이라도 물기를 머금었다면, 그는 환희에서 온 눈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개업의, 무슨 일로 나를 불러냈,”
“오랜만이야, 히이로.”
“사, 사키...!”

잠시 멍청하게 서있던 히이로는 이내 달려가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한참 눈물을 흘리던 그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물었다.

 

“사키...네가 어떻게, 여기에...”

“겨우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잖아~ 여기 계신 하나야 선생님이 애써주신 덕분에,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나한테는 아무런 말 없었잖아! 또 혼자서 위험한 일을 벌인 거냐!”
“진정하라고 도련님, 난 레이저를 되살린 가샤트를 사용했을 뿐이니까.”

“다른 이들은, 알고 있었나?”
“아니. 에그제이드를 비롯해 아무에게도 아직 알리지 않았어. 물론 사용을 허락한 위의 분들은 알고 계시긴 했지만, 그녀를 만난 것은 네가 처음이다 브레이브.”

“...나 보고는 무리하지 말라며.”
“그야 도련님은 잃을 게 많으니까. 되찾은 그녀를 포함해서, 전부.”
“개업의, 너,”
“또 그녀를 기다리게 할 셈이야? 후회할 일 더 만들지 말고, 이제부터 잘해. 그동안 못한 이야기나 실컷 나누라고. 난 가볼 테니.”

 


돌아서서 CR을 나서며, 이제는 그들의 앞날에 축복만이 있기를 빌었다.

언젠가 둘이 결혼식을 올린다면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줄 자신이 있었다.

그건 내 진심이었다.

 

 

소문은 빨라서 카가미 히이로의 연인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금세 병원을 한 바퀴 돌았다.

여러 이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웃는 히이로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너는 이제 상처 입은 표정을 잘 짓지 않게 되었다.

그런 얼굴을 하던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었다. 어쩌면 처음 사키와 사귀던 무렵보다 더.

그는 예전보다 상냥하게 그녀를 대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었으니까.

사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이 보기 좋았다. 네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여서.

그건 정말이지 내 진심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모모세 사키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소멸을 막지 못한 것에서 오는 죄책감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내가 그녀를 되살리고자 한 것의 가장 큰 목적은, 히이로의 미소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의사로서 그녀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목적도 물론 있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얼마나 자격 없는 의사란 말인가? 내가 여전히 면허를 되찾지 못한 것은 까닭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던 날, 해냈다는 기쁨과 덜어진 죄책감 뒤에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아쉬움이었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키가 아닌 히이로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엔 나도 어렸으니 몰랐고, 나중엔 인정할 수 없어서 부정했을 뿐이다.

어떻게 감히 내가, 스스로의 모자람으로 인해 그를 불행 속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그를 마음에 품었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그녀를 그에게 돌려주었으니, 내가 그에게 진 빚은 조금이나마 갚은 셈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이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모든 이해관계는 청산되었고, 우리 사이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더는 그의 곁에 남아있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가장 큰 시련이 되었지만, 너는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가졌던 모든 것들을 잃은 내가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일을 바로잡고 그에게 속죄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 인해 소중한 이를 잃은 그를 아끼고자 했고, 끝내는 사랑하고 말았다.

이 고고한 도련님의 그토록 약한 모습을 아는 게 오직 나뿐이라는 우월감도 조금.

결국에 내가 마지막까지 의사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덕분이었지.

나는 너에게서 빼앗기만 했는데, 너는 언제나 나를 끌어올렸다. 그게 그의 자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그가 없었다면 나 역시 해낼 수 없었으리라.

 

넘볼 수 없고, 결코 넘봐서도 안 되는 대상이다.

내 곁에 햇살 한 줌이 내려와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아득히 먼 저 하늘 위에 있어야 할 존재가, 잠시 지상으로 떨어졌을 뿐이다.

이제 밤이 찾아오면 태양은 수평선 아래로 사그라지고 내게서 온기를 거두어가리라.

하지만 괜찮다. 태양은 매일 다시 떠올라 저 멀리서 나를 비춰줄 테니까.

 

너는 밝음만 알면 충분하다. 어둠은 전연 알 필요가 없다.

모든 고통을 짊어지는 건 나 하나면 족하다.

희생당하는 건 나 하나뿐이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네가 괴로운 날이 다시 오게 된다면,

그저 내가 늘 이 자리에서 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주기를.

그것만은 허락해 주었으면 좋겠다.

특촬 플레이리스트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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