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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타 슈퍼전대의 이름이나 소속 캐릭터가 언급됩니다.

* 필자가 사투리에 미숙해 코토하의 말투에 사투리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 설정 관련 날조와 개인 캐릭터 해석 O

 

“나 결혼해.”

 

저택의 후원, 얕게 깔린 잔디와 잘 가꿔진 나무, 꽃 따위가 특유의 정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곳. 검도복을 갖춰 입고 목검을 어깨 위에 올려놓은 채, 자신의 가신을 맞이한 시바 타케루가 조금 전 들은 말을 채 소화해 내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렸다. 시라이시 마코가 그런 그의 얼굴을 덤덤한 낯으로 올려다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하얗고 고급스러운 편지봉투를 그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기어이 제 손에 들린 봉투를 타케루가 내려다본다. 봉투가 무척이나 무거웠다. 그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뭐라고?”

 

마코가 덤덤하게 말을 되풀이했다.

 

“나 결혼한다고, 타케루.”

 

시바 타케루, 외도중과 대를 이어 대적했던 제19대 시바 가의 당주이자 외도중의 우두머리인 치마츠리 도코쿠를 쓰러뜨린 신켄저의 신켄 레드. 아주 커다란 문제와 맞닥뜨리다.

 

*

 

“누님이 결혼을?”

 

치아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심드렁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 극적인 얼굴 변화에 일이 있다며 빠진 마코를 제외하고, 제법 오랜만에 모여있던 신켄저 5명의 시선과 쿠사카베 히코마의 시선이 모조리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 시선들과 마주하며 짧게 거드럭대던 치아키가 어깨를 으쓱였다. 거드럭댄다고는 했지만 제법 차분한 모습이 꼭 그 소식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타케루는 은연중 생각했다.

 

그리고 치아키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떠서는 타케루를 향해 놀리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당연히 알고 있었지.”

“… 당연하다?”

“고럼.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너 빼고 전부 알고 있었을걸?”

 

그 말에 이번에는 타케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가신들과 그의 소꿉친구, 그리고 그보다 어린 선대 가주를 바라보았다. 카오루와 다른 가신들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히코마조차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타케루의 귓가에 치아키의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 꽂혔다.

 

“듣기로는 고세이저도 온다던데.”

“그러니까, 지금…….”

“맞아! 타케루 네가 제일 늦, 아야! 야!”

“조용히 해라, 치아키! 주군과 아가씨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뭐, 왜? 쟤도 알 건 알…… 아 아프다고!”

류노스케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치아키가 비명을 내질렀다. 겐타와 카오루가 짧게 시선을 교환하면서도 타케루의 얼굴을 남몰래 살피는 사이, 류노스케와 치아키의 드잡이질을 간신히 말리는 데 성공한 코토하가 얼핏 긴장한 얼굴로 타케루를 돌아보았다.

 

“주군님.”

“…….”

“… 주군님?”

“… 아, 그래, 코토하.”

“…… 괜찮으세요?”

 

그녀의 한마디에 다시금 이목이 쏠렸다. 한 차례 더 드잡이질을 벌이려다 기어이 카오루에게 하리센을 얻어맞은 류노스케와 치아키가 시선을 한 번 교환했다. 그들이 이렇게 과도할 정도로 그들의 주군, 또는 제 후대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주 간단했다. 시바 타케루가 시라이시 마코의 전 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결혼 직전까지 논의가 오갔었다가, 남자 쪽이, 그러니까 타케루가 갑작스레 뻥 차버린.

 

혹자는 질문할 것이다. 본인이 찼는데 왜 저렇게 행동을 하나요?

 

신켄저가 이 질문을 듣는다면, 입을 모아 답할 것이다. 이것은 주군의 / 타케루의 / 타케 쨩의 낮디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그들의 주군이자 자신의 후대는 본디 시바 카오루의 그림자였고, 언젠가는 내려와 진짜 주군을 섬겨야 했던 자였다. 시바 카오루의 결단으로 제19대 당주에 올랐고 도코쿠를 없애며 모두의 사명을 완수했다지만은, 그녀의 그림자로써 혹독히 교육받으며 큰 세월과 한때지만 모두를 속였다는 죄책감은 여태 그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못했다. 그가 몸을 함부로 쓰는 것도 이 탓이다. 어깨를 버리고 후와 쥬조를 절벽에서 무너뜨릴 때도, 유난히도 동료들에게 곁을 주지 못하던 때도. 모든 것의 기반에는 그의 눌린 자존감이 있다. 타고난 그의 눈치가 있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시바 타케루는 여전히 타인을 대하는 것에 솔직해지질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마지막까지 살피고 갔던 이가 시라이시 마코다. 시라이시 가의 외동딸, 바람의 모지카라를 다뤄 신켄저 중 하나로써 위치한 자. 타케루나 류노스케와 나이대가 비슷함에도 그들보다 더 어른스럽게 굴 줄 알던 여자. 침착하고 다정하며 어린아이들을 좋아하고, 곤란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줄 아는. 그가 언젠가 아주 사랑해 마지않았던…….

 

혹자는 또 질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왜 헤어졌냐니까요? 이유는 간단하다. 천성으로 남아버린 시바 타케루의 낮은 자존감이 땅을 팠기 때문이다.

 

잔갸크를 기억하는가? 우주제국의 그 무수한 군대와 침략의 손길과 전투의 함성을 기억하는가. 속절없이 무너지던 건물들과 비명을 내지르던 많은 생명은? 히코마가 전해주고 텔레비전 속의 뉴스가 전해주던 속보와 그것의 한구석에서 스러지던 것들은. 동료들의 소란을 뒤로 하고 시바 타케루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게 있다. 아주 선명한 전투의 소리와 등을 맞대고 싸운 동료들과 선후배 전대들, 또는 적 같은 것들.

 

그리고 당신, 시라이시 마코…….

그녀는 몇 년 전의 그 전투에서 죽을 뻔했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 제국의 선발대를 찢어놓을 때 격발하던 포와 아슬아슬하게 스쳤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시바 타케루가 그것을 쳐내지 못했기 때문에. 시바 타케루는 그녀가 공격을 빗맞고 휘청거리면서도 역으로 그 전함을 베어버리던 순간부터, 싸움이 끝나고 그녀가 쓰러지던 순간까지 전부 기억한다. 놀라 달려드는 그와 다른 전대의 멤버들에게 괜찮다는 듯한 손짓을 보이며 웃었던 얼굴도. 아주 강인하고, 다정한…….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다. 마코 본인은 기막혀하며 거절했지만, 타케루는 완강했다. 타인이 본다면 아주 이기적인 이유일지라도 타케루 본인에게는 아주 타당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정작 당신을 지키기에는 부족한 듯해서. 나는 당신에게 언제까지고 충실한 아군이 되어주겠지만 그 옆자리에 서기엔 부족한 것 같다고…….

 

“…… 타케루.”

“… 아, 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이야기에 집중을…….”

“나였다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할 것 같구나.”

 

타케루가 사뭇 놀란 시선으로 카오루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묵묵히 받아치던 카오루가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기모노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어깨가 위로 한 번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타케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코 말씀입니까.”

“그래, 마코 말이다. 그녀에 대해 생각하던 게 아니었나?”

“… 아뇨, 맞습니다.”

“그래, 그럴 것 같아서 말하는 게다. 나라면 지금이라도 찾아갈 거라고.”

“…… 하지만.”

 

카오루가 고개를 기울인다. 타케루가 부드럽게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기울이다 말고 새어 나온 한숨을 삼킨 카오루가 다시금 어깨를 들썩였다. 손짓으로 구석에 있던 히코마를 부른 그녀가 노인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속삭이는 것을 들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던 그가 고개를 돌려 타케루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주군.”

“…… 어.”

“혼례가 며칠이었지요?”

“… 3일 후.”

“예, 그렇지요. 그리고 저나 아가씨께서 아는 바가 옳다면, 그때 식장 안에서 결혼하지 말아달라 말하는 것보단 지금 이야기하는 게 나으실 겁니다.”

“그래. 예의상으로든, 네 체면상으로든.”

“…… 아직도 제 얼굴에 그렇게 티가 납니까?”

 

타케루가 물었다. 시선을 교환한 카오루와 히코마가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표정을 읽은 타케루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세상엔 말과 표정을 동시에 보는 것보다 표정 하나만이 더 적나라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

 

그러나 시간은 흐르는 법.

 

3일은 쏜살같이 흘렀고, 그 3일이라는 시간 내내 시바 가문의 저택에는 예전의 활기가 넘쳐흘렀다. 애초에 3일 전 그들이 모였던 이유는 타케루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혼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것이기도 했다. 타케루가 제안했던 일이었다. 모이자마자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칼날 같은 사실 확인까지 당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아니지,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까?

 

…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 시바 타케루는 신부 대기실 앞을 서성거렸다. 그를 제외한 신켄저 전원과 히코마는 마코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뿐이었건만, 타케루는 도저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좀 들어오면 안 돼?”

“…… 아.”

“앞에서 서성이는 거 다 들려, 타케루.”

 

왜냐하면, 흰 드레스 안의 마코는 아주 아름다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녀의 체형에 맞게 재단된 드레스가 대기실의 조명을 받고 눈부시게 빛을 내었다. 흰 면사포가 머리카락을 소복이 덮고, 풍성한 드레스 자락은 그녀와 한 뼘 정도 되는 거리에 서 있던 타케루의 손등을 간질였다. 언젠가 그가 상상하던 모습이었다. 아주 눈부시게 아름다운.

 

눈을 깜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타케루의 얼굴을 훑은 마코가 가볍게 웃었다. 타케루가 괜스레 몸을 움찔거렸다.

 

“왜, 새삼 반했어?”

“…….”

“미안해, 농담 좀 해봤어. 그치만 정말 들어와. 밖에서 서성거리는 게 신경 쓰였거든.”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인 타케루가 그녀를 따라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널찍한 대기실 안에는 신부가 앉아 있을 소파와 화장이나 옷매무새를 고치기 위해 세워둔 듯한 전신 거울 하나, 조금 전까지 사진사가 사용하고 있었을 삼각대 등이 놓여 있었다. 습관적으로 주변을 훑어보며 도로 소파 위에 앉은 마코 쪽으로 향한 타케루가 그녀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구두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던 그녀가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 아니, 그냥.”

“본식 들어가기 전부터 신발을 신고 있으면 아플 거 같아서.”

 

그것 때문에 그가 자신을 바라본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특유의 다정한 말투로 답해준 마코가 마저 신발을 신었다. 입을 몇 번 벙긋거리던 타케루가 대꾸하길 포기하고 소파 근처의 작은 소파로 걸음을 옮겨 앉았다. 구두를 고이 내려놓은 그녀가 소파 등받이에 기대 타케루를 보았다.

 

“고세이저는 봤어?”

“… 그래, 왔더군.”

“왔지. 안 오면 내가 아주 서운해할 거라고 협박을 좀 했거든.”

“그런가.”

“어쨌든 같이 싸웠으니까. 동료잖아. 너희 테이블 바로 옆으로 잡아뒀어…….”

 

타케루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레전드 대전이 죄였고, 브레드런에게 당해 마코를 비롯한 동료들과 고세이저를 공격한 것이 죄였으며, 그녀가 결혼하기 직전인 지금까지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죄였다. 죄들이 컸다. 당사자들이 괜찮다고 해줘도 소용이 없는, 아주 많은 죄들이, 아주 깊게, 깊숙이.

 

그리고 마코가 그를 다시 불렀다.

 

“타케루.”

“…… 아, 어.”

“오늘 와줘서 고마워.”

 

마코가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 시바 타케루는 그 간단한 손짓에도 심장이 나부낀다. 속절없이, 무겁고 빠르게……. 심장 소리를 죽이려 노력하느라 잠시 침묵하던 그가, 이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왜?”

“사실 안 올 줄 알았으니까? 그렇잖아, 전 애인 결혼식에 오는 건 어렵지.”

“….”

“그래서 네 초대장이 제일 마지막에 간 거야. 고민했거든, 아주 많이.”

“그런가.”

 

타케루는 조금 전 손님들을 맞이하던 신랑을 떠올린다.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하와이에서 만난 어느 집의 삼남, 시라이시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했던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주 미덥지 못한 상대였으나 그는 그자에 관해선 입을 다물었다. 주군인 동시에 전 애인이라는 위치상 그가 예비 신랑에 대해 꺼내는 마디마디마다 최소 신랄한 평가, 최대 질투가 될 게 분명했다. 아무리 마코를 포기하지 못했다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을 욕하고 싶지도 않았고.

 

“신랑 봤어?”

“그래. …… 좋은 사람 같던데.”

“괜찮은 사람이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인정했건만, 그녀가 보인 인정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타케루는 제 숨을 잠시 멈췄다가 도로 돌려놓았다. 어쩌면, 하고 마음이 속삭인다. 어쩌면 저게 나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바 타케루는 그녀를 지키지 못했기에.

 

“… 결혼, 축하한다.”

 

결국 그가 멀거니 내뱉었다.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한 마디를 남겼다.

 

“고마워.”

*

 

예식장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타케루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자리로 향하려던 그가, 자신을 가볍게 두드리는 손길에 뒤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낙천적이고 다정한 얼굴, 두어 번 정도 같이 싸웠던 천사들의 리더.

 

“… 아라타?”

“오랜만에 보네, 타케루.”

 

그제야 조금 전 마코의 말이 떠올랐다. 고세이저의 테이블을 그들의 옆 것으로 배정해 두었다고 했던가. 모르는 사람의 실없는 대화를 받아주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실없는 생각과 함께 타케루가 아라타의 손을 가볍게 잡고 흔들었다. 달갑게 웃어 보인 아라타가 타케루를 바라보았다.

 

“결혼식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레전드 대전으로부터…….”

“정확하진 않지만 꽤 지났지. 카페는 잘 되어가나?”

“으응, 덕분에. 오늘은 휴업했지만!”

 

멋쩍게 웃는 아라타의 얼굴을 바라보던 타케루의 생각이 영 다른 곳으로 튀었다. 호성천사라지만, 너희도 결국엔 천사니까, 마코의 결혼식은 천사가 축복해 주는 결혼식이 되는 건지. 그렇다면 그녀는 오래오래 행복할 건지…….

 

 

행복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주받을 걱정은 없겠군. 잠시 침묵하던 타케루가, 아라타의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그를 붙잡은 손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한편 아라타의 뒤, 예식장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에리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타케루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주군님, 그거 알고 있었어?”

“…… 무엇을?”

“… 엑, 몰랐어? 주군님 동료들이 말해줄 거야.”

 

얼른 동료들 쪽으로 가보라며 손짓한 에리가, 그에게 손을 흔들던 아라타를 끌고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깜박이던 타케루가 서둘러 배정받은 자리로 향했다. 그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겐타와 류노스케가 그를 서둘러 앉혔다. 그러곤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시끄럽게 속닥거렸다.

 

“타케 쨩, 신랑이 글…….”

“주군, 신랑 쪽이 글…….”

“… 그렇게 동시에 말할 거면 한 사람만 해.”

 

시선을 교환한 둘이 잠시 머뭇거리나, 싶더니 류노스케가 타케루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가 익숙하다면 익숙할 움직임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류노스케가 천천히 속삭였다.

 

“신랑 쪽이 수상합니다.”

“… 수상하다?”

“없애긴 했습니다만, 조금 전 틈새를 빠져나온 나나시를 없앴습니다. 식장에 몇 마리가 더 있는 듯해 보입니다.”

“나 방금 물기 어린 발자국도 봤어, 타케 쨩. 금방 지워지긴 했지만.”

 

겐타가 맞장구치듯 속삭였다. 정보를 소화하느라 잠시 말이 없던 타케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본다. 이곳은 선상이다. 아주 커다란 유람선, 신랑 측에서 마코의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하루 정도를 빌렸다던. 강 위에 띄워진 이 배는 결혼식이 마무리된 후 피로연 동안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닐 예정이었다.

 

강과 틈새, 나나시….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무척이나, 그리고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시바 타케루는 잠시 주군의 얼굴이 되었다. 물론 치기 어린 걱정일지도 모른다. 그가 잘못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당신의 결혼식이다. 당신이 가장 행복하고 안전해야 할 날이다. 그러므로 그는 긴장하고 굳은 얼굴로 자신을 제외하면 전부 소식을 들은 듯한 다른 신켄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카오루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부드럽게 끄덕였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타케루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작전을 하나 짜겠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신부, 입장!”

 

마코가 버진로드를 내딛었다. 흰 드레스 자락이 부드럽게 팔랑거린다. 버진로드의 끝자락에는 신랑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선에선 애정이, 뻗어오는 손에서는 예의가, 올라가는 입꼬리에는 반짝이는 희망이. 그것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던 시라이시 마코는 문득 생각한다.

 

이 결혼식, 정말 계속해도 되는가?

 

하지만 좋은 사람이지. 마코가 한 걸음을 다시 옮긴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 걸음. 정말 상냥하게 잘 대해줬고……. 그리고 또 한 걸음. 마코는 문득 상대와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부딪힌 어깨와 옷에 쏟아버린 커피와 정신없는 사과 표현, 그리고. ‘시라이시 마코 씨죠?’ 하고 물어오던 듣기 좋은 목소리가…….

 

잠깐.

 

그는 어째서 첫 만남부터 내 이름을 알았는가?

 

“…… 잠깐!”

 

마코가 마법에라도 걸린 듯 우뚝 멈추어 선다. 신부 측 하객들과 신랑 측 하객들이 단체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시선을 향했다. 당황한 낯빛의 신랑과 놀란 눈빛의 마코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마코는 더더욱 믿어지지 않는 눈빛이었는데, 그 대사를 뱉은 것이 시바 타케루였기 때문이다.

 

그래, 그녀의 전 애인. 아주 괘씸하기 짝이 없는 남자.

 

처음 만났을 때는 아주 꽉 막히고 무뚝뚝한 남자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를 동정했으며,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한때는 당신의 옆자리를 상상했다. 당신과 생사고락을 함께했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를, 나를 불러 모은 덕에 멋진 인연들을 새로이 얻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당신이라면, 낯을 가리는 게 흠이고 자존감이 낮은 점이 안타깝지만, 내가 믿어보기로 했었던 당신이라면. 옆자리에 서 봐도 좋을 것이라고……. 지금은 전부 옛날얘기가 되어버렸지만.

 

다만, 그럼에도,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예상한 적 없었다.

 

“타케루, 뭐해?”

 

잔뜩 당황한 마코가 속삭이듯 소리쳤다. 단상 위에 도착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마코와 그 아래 어둠에 잠긴 타케루의 시선이 마주친다. 타케루가 입을 달싹거리는 사이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 두 테이블이 비어있었다. 고세이저의 것과 제 동료들의 것. 앉아 있다가 그녀를 부른 것은 오직 시바 타케루 한 명뿐.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두 번이나 당황한 덕에 완전히 깨어난 머리가 맹렬히 움직였다. 직감이 울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망설이던 그녀의 전 애인이 입을 열었다. 동시에 주례도 입을 열었다.

 

“…… 마코.”

“신부는 신랑을 영원히…….”

“… 응?”

“… 맹세하시겠습니까?”

“맹세하지 마라.”

“…… 뭐?”

“신부, 대답하세요.”

“대답하지 마.”

 

잠시 망설이던 마코가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의 조명이 너무 밝은 탓에 상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언제고 그녀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경종을 울리는 직감과 간절히 내뻗은 그의 손 따위가 마코에게…….

 

“나와 가자.”

 

아니지, 사실 그를 아직도 사랑하는 것이 맞아서.

그녀가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그것을 보고 번개같이 다가온 타케루가 그녀를 끌어당겨 길 아래로 끌어내리는 한편, 목청을 돋워 지금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식장 입구에서 갑작스레 쏘아진 물빛 화살이 힘차게 쏘아져 나가더니 단상 위에서 화난 표정으로 마코를 내려다보던 신랑의 발밑에 내리꽂혔다.

 

신랑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

 

“있지, 타케루. 신랑이 정말 외도중의 잔당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어?”

“… 미안하지만 그래도 네 혼례를 파토냈을 거다.”

“혼례 당일에 그걸 파토내는 건 예의가 아닌 거, 알지?”

“지겹게 들었지.”

“그럼 됐어. 낯도 가리는 사람이 그렇게 나서고 말이야.”

“네 주의를 끌려면 내가 적격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솔직하게는?”

“…….”

“타케루.”

“…… 같이 도망가자고 하고 싶었다고 하면, 웃을 건가?”

“예상보다 상당히 과격한 애원이라고 하려 했는데?”

“마코!”

 

 

fin.

특촬 플레이리스트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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