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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도 채울 수 없는 텅 빈 공허함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너를 잃고 시작됐나봐 

평화로운 구름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바람 같은 나날이 불어가는 일상.
이제는 시간이 흘러 하카란다를 떠나 새로운 거처로 옮겨왔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 존재임을 숨기고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려면 그리해야 하기에. 그리고 이제 조금 더 나아가, 너에게 보여주고자 싶은 세상을 더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챙길 짐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언제든지 세상을 담을 수 있는 촬영장비들과,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장비들, 그리고 자잘한 것들. 그러한 것들만 챙겨 하카란다를 나와 도착한 곳은 너를 만났던 그 오두막이었다. 그 날 이후 사람의 왕래가 없었던 탓인지 치울 것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지내기는 편한 곳이었다.

 

그렇게 나의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곳을 떠나와 산지도 꽤 여러해가 되었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다. 아니,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와의 만남을 통해 따스함을 알고 인간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채워져 갔는데, 언젠가부터 이전처럼 무언가 공간이 생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타치바나와 무츠키, 코타로와도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마네와도 만나기는 했지만 어딘가가 비어있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한번은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 있어 하루종일 촬영을 나가던 때가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장비를 마무리하고 해변길을 따라 걷던 중, 익숙하게 눈물이 차오름과 동시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마음을 비워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시야가 흐려지면서 마음 한 쪽이 시려오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너를 떠나보내고 시작된 여러 감정 중에서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 대답도 없었던 너의 전화를 받고 시작된 그리움의 연장인 것일까. 처음 느껴보는 아픔에 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때의 밤을, 바다를 담아낸 사진들을 인화하고 나니, 마음의 빈 공간이 더욱더 커지고 있었다. 이 별을, 바다를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와 함께 보고 싶었는데. 네가 알려준 그 감정들을, 그 기쁨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다른 누구보다 너와 함께.

그러나 내 곁에는 네가 없다. 그 가을, 세계를 구하기 위해 떠난 네가 없는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고 변하고 있다. 그리고 내 마음과 같이 텅 빈 해질녘 거리에 서서 깨달은 것은, 이 공허함이 바로 너를 떠나보내고 남아버린 그리움이었다는 것. 

네가 없는 세상에 나는 남아 너의 말을 새겨 살아가고 있다. 칙칙하고도 아름다운 이 세상에 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너를 만나고 싶다라는 욕심을 부릴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너와 헤어진 후 그리움으로 비어버린 마음을 눈물로 채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리라는 의지로.

영원히 살며 세계의 종말에 나타나는 마지막 언데드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움을 버려둔 채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먼지로 흐릿해진 세상에서 너의 온기를 만날 때, 각자의 길에서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 끝에 텅 빈 마음이 채워지길 바라며.

특촬 플레이리스트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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