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광년
별 자신도 잊어버렸을 즈음에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어
* 사망 소재 주의
류타로스가 조용히 손을 들어 무언갈 가리켰다. 이마진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그러나 그것은 도의적인 행동이었고, 그들은 시선이 닿기 전에도 류타로스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지 알고 있었다. 천문학계는 오리온자리 어깨에 발생한 예정된 파멸에 반색을 표했다. 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투로 ‘보름달이 뜨지 않아도 몇 개월 동안 밤하늘은 밝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아마 그들이 가장 잘 아는 천문학자인 사쿠라이 유토 역시 그의 아내와 딸에게 베텔게우스의 이야기를 해댔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옆에 앉은 이가 단정적으로 초신성에 대한 지식을 늘어놓을 리가 없었다.
“사실 초신성이라는 것은 새로운 별의 탄생이 아니라 별의 죽음이래. 그런데 과거의 사람들이 빛이 엄청 밝아지는 것만 보고 별이 탄생했다고 잘못 지레짐작한 거지. 아버진 가끔씩 용어를 지금에라도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반응은 영 시원찮았었나 봐.”
“그거 안 됐네.”
다른 이들은 도저히 대답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자신의 감정마저 속이기에 익숙한 우라타로스만이 짤막하게 답했다. 하나는 위로의 의도로 말을 꺼냈었고, 그것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약한 실패감을 느끼며 입을 닫아버렸다. 다섯 명은 그렇게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이질적인 빛은 무거운 침묵과 함께했다. 그 침묵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인지 하나가 실패를 성공의 발판삼아 다시금 도전해왔다.
“베텔게우스와 지구의 거리는 640광년인 거 알아? 어림잡아 700광년이라고도 하고 대략 550광년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저건 빛의 속도로 달려도 500년 이상 걸릴 만큼 많이 떨어져 있어. 그렇다는 것은 지금 우리는 약 500년 전에 죽은 별의 최후를 지금에서야 보고 있는 거야.”
그는 말하는 도중 이것이 좋지 못한 화두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말은 급히 방향을 틀거나 얼버무리지 못할 만큼 많이 진행되었었고, 하나는 자신이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기분 속에서 말을 끝맺었다. 그가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모타로스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숨길 수 없었다. 하나는 우물쭈물하다 결국 말머리를 빙빙 돌리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삼촌 일은 참 안 됐어.”
다른 이가 듣는다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죽음에 대한 위로는 보통 친구가 가족에게 전하곤 한다. 가족보다 소중한 친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는 가족을 꽤 사랑한 모양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킨타로스는 그 ‘다른 이’와 생각이 같았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이상하게 들리지 않길 바라며 물었다.
“하나 니는 삼촌 일이 안 슬프나?”
하나는 그의 말에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예전에 이미 충분히 슬퍼했으니까 그렇지.”
‘노가미 료타로를 세상에서 제일 불운한 사람이라고 칭한다면, 이는 과대해석보다 과소평가에 가깝다.’ 여기까지가 그의 이마진들이 알고 있던 상식이다. 그러나 그들이 못 본 사이에 그 상식은 과거형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그의 주변엔 확실히 불운이 항상 존재했으나 동전의 반대면처럼 행운 역시 그곳에 있었다. 그는 운 좋게도 본인이 좋아하던 이가 본인을 좋아했고, 운 좋게도 제 아이들이 사고 없이 장성했으며, 운 좋게도 그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아 제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많은 이가 우려했듯이 불운에 의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병 없이 천수를 누리다 어느 날 자는 듯이 눈을 감은 것도 천운이라면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호상이라 할지라도 죽음은 슬픈 법이다. 평소 두터웠던 그의 인망 덕에 조문객은 줄을 이었고 많은 이가 영원한 이별에 눈물지었다. 그러나 많고 많은 조문객 중 이마진은 데네브와 테디밖에 없었는데, 덴라이너를 타고 시간을 누비는 그들에게 소식을 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토가―따지자면 데네브가 그 의견의 70%의 비율을 차지하지만―이는 그들에게도 고인에게도 못 할 처사라고 하며 늙은 몸을 직접 이끌고 몇 번씩이나 제로라이너를 타고 시간을 샅샅이 뒤져봤으나 이상하게도 그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역장에게 부고를 전하고는 혹여 덴라이너를 마주한다면 소식을 전해달라고,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현재에 와달라는 전언을 부탁했으나 그는 미소를 지으며 유토를 바라보기만 할 뿐 끝까지 알겠다는 대답을 받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간의 운행 때문일 것이라며 이해하셨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시간의 운행이 친구의 장례식보다 중요해? 그렇게까지 개인을 희생해서라도 시간의 운행은 지켜야만 하는 건가?”
사쿠라이 유토와 노가미 아이리의 딸이, 그리고 하나가 할 만한 발상이었다. 시간을 잃은 특이점으로서의 하나는 사라졌지만 그때 했던 경험과 생각들이 그의 깊은 곳에 남아 자아를 이루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모타로스가 돌발적으로 물었다.
“코딱지 여자, 너 몇 살이냐?”
무례할 수 있는 호칭과 무례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하나는 이전처럼 주먹을 내지르는 대신 추억에 잠겨 웃었다.
“그 호칭도 오랜만이네. 지금 나는 64살이야.”
“64살이라.”
이마진들은 다시금 시간의 도약에 낙오된 이방인처럼 굴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하나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 가장 큰 고민이 친구 관계인 11살짜리 꼬마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이젠 중년이 되어 장성해있었다.
“우리가 너무 늦었네, 그치?”
류타로스가 밤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너무 늦었어.”
“아직 안 늦었거든.”
연기처럼 흩어지려는 한탄을 하나가 습격했다. 그의 볼멘소리 섞인 부정에 이마진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는 짐짓 팔짱을 끼고 화난 척을 하다가 본인을 가리켰다.
“내가 있잖아.”
그들의 시선이 실망 속에 다시 흩어졌다. 하나가 농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이마진들의 반응은 하나가 기대한 것과는 더더욱 달랐다. 하나는 그들의 주의를 다시 그러모으려 노력했다.
“농담 아니야! 삼촌이 너희를 그리워하지 않았을 것 같아? 몇십 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너희를 걱정하지 않았을 것 같냐고. 그래서 삼촌이 나에게―”
하나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모모타로스가 벌떡 일어나 하나의 멱살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말이 아슬아슬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모모타로스를 자극해버린 모양이다. 모모타로스는 제 심사가 제대로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현재가 우리 모르는 사이에 몇십 년 지나있는게, 그래서 친구 가는 길도 제대로 못 지킨게 우리 탓이냐? 우리라고 이렇게 너무 늦게 오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
그는 말리는 동료를 뿌리치고 하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하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비스듬히 하여 모모타로스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 기개만큼은 60살이 넘은 중년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도 밀리지 않으며 대꾸했다.
“너희를 책망하려는 의도가 아니야, 지금이야 예민하니까 뭐든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겠냐마는.”
“그럼 뭔데.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모모타로스가 그 말을 한 것은 실수였다. 하나는 자신의 손을 제 허리에 얹고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극한까지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결국 모모타로스가 다시 하나에게 달려들으려 할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삼촌이 몇십 년 전에 준비한 선물, 궁금하지 않아?”
모모타로스는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는 넘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역행하는 식의 해괴한 동작을 취하며 다시 일어섰다. 이마진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하나에게 모였고, 그것은 하나가 기대한 반응에 완벽히 부합했다. 하나는 어떠한 과거를 불러오듯 낮게 읊조렸다.
“‘만약에 모두가 너무 늦게 온다면, 그래서 나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이 위치를 그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어.’ ‘타임캡슐이에요?’ ‘응. 어쩌면 네가 알려주지 않아도 시간을 여행하다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우라타로스는 얼떨떨함을 떨치지 못하고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우리에게 남긴…… 타임캡슐이 있다는 거야?”
“어디? 어디 묻혀있어?”
그들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하나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그런 이마진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잃어버렸어.”
삼 초 동안의 상황 파악 후 한 차례 폭동이 일어났다. 겨우 이성줄을 잡고 말리는 이도 있었고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주겠다며 돌진하려는 이도 있었다. 다섯 명의 의도가 매섭게 충돌했다. 상황이 과하게 어지러워지자 결국 하나는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다.
“잘 들어! 잃어버렸다고, 잊어버린 게 아니라!”
과열된 상황이 겨우 진정되었다. 이마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숨을 씩씩거렸다. 그 틈을 하나는 놓치지 않았다.
“장소는 완벽하게 기억이 나. 그런데, 말했잖아, 몇십 년 전의 선물이라고.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시간이란 말이야. 삼촌은 타임캡슐을 키보가하라에 묻으셨어. 근데 몇 년 전에 그곳이 재개발되면서 싹 갈아엎어졌단 말이야?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모양이야. 내가 찾아가 봤을 땐 이미 공사가 끝난 상태였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타임캡슐의 행방을 물어봐도 돌아오는 건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고.”
“그라믄 결국 말짱 도루묵 아이가.”
“괜히 좋다 말았네, 대체 왜 말한 거야…….”
방금 전 좋았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어쩌면 떠들썩하게 난동을 부린 뒤에 맛보는 절망감이라 그 깊이는 더욱 깊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는 그들이 갑작스럽게 우울해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 덴라이너 타고 여기로 왔잖아.”
이마진들은 시선만 굴려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양 바라보았다. 그들의 그러한 태도 때문에 하나는 더더욱 혼란스러워했다.
“덴라이너는 제로라이너마냥 타임머신인 거 아니야?”
당연한 말이 다시 반복되었다. 몇몇은 뚱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어떤 이들에게는 점차 깨달음이 그늘을 따라 들기 시작했다.
“지금 없을 뿐이지, 키보가하라가 재개발되기 전에는 그곳에 있지 않겠어?”
하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이마진을 위하여 더욱 친절하게 풀어 설명하였다. 그제야 모두가 하나가 현재에 찾을 수 없는 유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았다. 네 명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가 당장에 덴라이너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뜻 멀어지는 감사 인사가 들린 것 같았지만 하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옛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한 번 웃어주었다.
류타로스의 그림 실력이 나름 늘었기 때문에, 그들이 기억으로 만든 동네의 지도는 퍽 쓸 만했다. 이쪽은 밀크 디퍼, 이쪽은 그때 농성했던 목욕탕, 이쪽은 병원…….
“그리고 여기가 그 언덕이야.”
류타로스는 선을 하나 더 덧대고는 연두색 크레파스를 갈무리했다. 그는 위치가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키보가하라 언덕을 멋지게 표현해내었다. 킨타로스는 학예회에서 감격하는 학부모의 기분을 알 것 같다고 느끼며 저도 모르게 박수갈채를 보낼 뻔했다. 우라타로스가 검지손가락을 펼쳐 언덕을 가리켰다.
“가장 큰 문제는 타이밍이지. 얼마나 과거로 돌아가야 알맞을지 우리는 모르잖아.”
이마진들은 긍정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유 없이 과거를 들락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곧 그들의 주의가 한 인물에게로 모였다. 그는 늘 먹던 볶음밥만 묵묵히 먹을 뿐 이마진들이 원하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기대가 곧 기다림이 되고, 기다림이 곧 지루함이 되어갈 때쯤, 볶음밥에 꽂혀있던 깃발이 픽 쓰러져버렸다. 오너는 으레 그랬듯 특유의 표정으로 잠깐 놀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마진들은 지루함을 접고 다시 기대를 펼쳤다. 그러나 오너가 내민 것은 대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그것을 알아낸다고 쳐도, 어떻게 티켓 없이 과거에 갈 생각이죠?”
유품이라는 명목하에 슬쩍 넘어가려 했던 부분을 오너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매사 느긋해 보이는 그는 언제나 세심하고 집요한 사람이었다. 이마진들은 제 발 저린 도둑의 형태를 몸소 구현했다.
“크아악, 그냥 대충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니냐?”
“그 부분 우예 안 되겠나?”
“우리, 시간의 운행을 지키기 위해 기여한 바가 큰데 포상 셈 칠 수 있잖아요.”
“료타로를 만나러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료타로가 남긴 물건을 찾으러 가겠다는 건데 괜찮지 않아? 대답은 듣지 않을 거야!”
오너는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빠르게 찍는 것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종식시켰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실망과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오너를 바라보았다. 오너는 그러한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차갑게 대답했다.
“사사로운 까닭으로 쓰여서는 안 됩니다.”
불만의 소리가 다시 새어 나왔다. 그들은 제각각의 감상을 퉁명스럽게 내놓았다. 오너는 그런 불평에도 더 할 말은 없다는 투로 이마진들을 뒤로한 채 식당차 밖으로 걸음했다. 그러다 그는 돌연 문 앞에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까먹었던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27년 1개월 5일 전에 시간의 운행을 망치는 이마진이 출현했다고 하더군요.”
모모타로스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으나 우라타로스는 달랐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오너에게 물었다.
“혹시, 위치는요?”
“키보가하라 근방입니다.”
이번엔 킨타로스와 류타로스가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글카모 거서 쪼매 다른 거 해도 되는 기가?”
“시간의 운행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요.”
“땅을 파보는 건?”
“싸우다 보면 땅은 다소 파일 수 있겠죠.”
그제야 모모타로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얼마나 급히 일어났으면 책상에 놓여있던 지도들이 전부 뒤집혀 흩날릴 정도였다.
“그 시간에…… 있는 거냐?”
그에 오너는 빙긋 웃었다.
“료타로 군은 특이점이니 그가 남긴 것이 시간적으로 중요한 표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을 망치고 싶어 하는 이마진이 그즈음에 나타날 확률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설사 100보다는 0에 가깝다고 한들 당신들은 가지 않을 이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말에 이마진들은 히죽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 명 중에 군소리를 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오너는 그들의 확고한 반응에 가만히 웃었다.
“그렇다면 출발하겠습니다.”
오너의 말과 함께 덴라이너는 천천히 과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류타로스의 총신에서 출발한 총알이 상대 이마진의 이마에 도착했다. 그러나 총알은 이마에서 멈추기엔 불만스러웠다. 그것은 이마는 도착지가 아니라 경유지라고 생각했고, 이마를 지나 그 뒤에 있는 벽에 꽂히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했다. 류타로스는 총에서 나는 연기를 훅 부는 여유까지 부려준 뒤에 제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아직 못 찾았어?”
그들은 몸을 바짝 숙이고 있다가 류타로스의 목소리에 두더지처럼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마진들의 얼굴은 우스꽝스러웠는데, 모두가 얼굴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모타로스가 코를 슥 닦자 나타난 수염 형상의 흙에 류타로스는 결국 웃음을 못 참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야, 웃지 말라고! 네가 파던가!”
“하, 하하. 미안해. 그치만 너희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아하하, 하하.”
“료타로 녀석, 어데에, 얼매나 깊게 숨켜놓은 기고…….”
류타로스의 웃음소리에 이골이 난 것인지, 아니면 도저히 보이지 않는 타임캡슐에 싫증이 난 것인지 우라타로스는 손을 탁탁 털고 아주 앉아버렸다. 모모타로스는 그런 우라타로스에 항의하려다가 이내 본인도 털썩 앉아버렸고, 그에 킨타로스마저 손을 놓고 바닥에 앉았다. 키보가하라는 기술이 더욱 발전해 매캐한 매연이 하늘을 뒤덮은 시기임에도 밤하늘의 장관을 놓치지 않은 곳이었다. 류타로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에는 베텔게우스가 아직 멀쩡하네?”
일순 분위기가 급변했다. 류타로스의 입에서 나온 ‘베텔게우스’라는 말은 시간의 열차가 아님에도 그들을 친구의 부고를 뒤늦게 전달받은 순간으로 데리고 갔다. 모두의 머릿속에 적색거성을 들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하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나가 말한 거 기억 안 나? 이미 폭발은 했을 거야. 지금은 아직 그 빛이 지구에 닿지 않은 거고.”
우라타로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시대의 인간은 베텔게우스가 이미 죽은 지도 모르고 오리온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고 친구를 찾아올 시점의 이마진들을 닮아있었다. 잊고 있었던 쓰디쓴 감각이 역류했다. 몇 년 들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잔인한 시간은 시간여행자의 인식을 왜곡시켜 몇십 년을 몇 년이라고 착각하도록 만든 모양이었다. 조금 늙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친구가 돌연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과거의 사람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 불행히도 이마진들은 그 대답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별은 그들의 지각을 비웃듯 기억과는 전혀 다른 광경을 보여주었다. 베텔게우스는 자신의 몸집을 한껏 늘린 후 모든 것을 게워내었다. 덕분에 하늘이 그들의 속과는 다르게 환했었다.
“여거는 우리가 기억하는 거랑 거진 똑같데이.”
“동감한다.”
다시는 현재에 돌아오지 않을 광경이기에 그들은 두 눈 가득 별의 형태를 담았다. 애써 뒤집은 기분인데 다시 착잡해졌다. 별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표현에 자주 인용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나 심정을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땅을 파다 말고 심리적으로 파고 있으니, 어느새 덴라이너가 이마진들의 옆에 도착해있었다. 나오미는 문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들며 해맑게 그들을 불러댔다.
“이제 슬슬 오지 않으면 오너가 두고 간대요!”
오너가 그들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때맞춰 도착한 덴라이너는 단순 우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현실로 끌어들여 결과적으로는 구멍에서 느적느적 기어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모모타로스는 부러 힘차게 소리치며 뛰어갔다.
“늦는 사람 커피 없다!”
그에 류타로스가 응하며 부산스럽게 따라갔다. 킨타로스는 몸을 숙이며 놀이에 어울리지 않는 듯싶더니 바닥을 손으로 팍 치고는 달려갔다. 그들의 과장된 행동은 필히 슬픔을 떨쳐내기 위한 것이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고 느끼며―본인의 처지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에 자조하며―우라타로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몇 번째로 여기 찾아온 거지?”
모모타로스는 자신의 등 뒤로 삽을 던져버리며 말했다.
“아홉 번째다.”
삽에 맞을 뻔한 류타로스가 성질을 내며 다시 모모타로스에게 던졌다. 그러나 모모타로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만 옆으로 젖혀 삽을 피했다. 빗나간 삽은 운 좋게도 땅에 꽂혔다.
“지금이 몇 년 전이라고?”
킨타로스가 꽂힌 삽을 뽑아 쥐고 자신의 발밑을 조금 파보았다.
“51년 전이지.”
킨타로스의 대답을 들은 모모타로스가 그가 쥔 삽을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 시간에 있을 리가 없잖아!”
모두가 모모타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씩씩거리며 잠시동안 분을 삭여보았다. 그러나 분은 제대로 삭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삽을 다시 집어들고는 어찌 분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투로 노려보다가 무릎으로 삽의 자루를 때렸다. 반으로 부숴버리려는 의도였겠지만 자루는 멀쩡했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그의 무릎으로 향했기에 그는 이번엔 삽을 던져버리고는 무릎을 손으로 비볐다. 순식간에 험한 꼴을 당한 삽을 우라타로스가 잠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쵸, 하나 씨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에 있었던 일은 아니랬으니까요.”
“다시 한번 물어보러 갈까?”
“또 물어본다고 까묵은 기 기억 날라꼬?”
무릎에 불이 날 정도로 가열차게 비빈 끝에 고통이 거의 가신 모모타로스가 다시 일어나서 쏘아붙였다.
“그걸 아는 놈들이 왜 묵묵히 땅을 파고 있냐?”
“그야…….”
우라타로스는 간단히 대답하려 했으나 막상 말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 질문을 본인에게 다시 물어봐도 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옆을 흘긋 바라보니 킨타로스와 류타로스도 비슷한 사정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본인을 파악하기보다는 그들의 심정을 지레짐작하기로 했다.
“파다 보면 나올 거라고 믿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우리, 아무래도 좀 지친 모양이에요.”
모모타로스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납득은 한 것 같았다. 그는 몇 번 투덜거리다가 목소리의 음량을 키웠다.
“그러니까 망할 영감이 분명 우리를 부려먹으려고 이딴 짓을 하는 거야.”
“하나 꼬셔가꼬? 와?”
“이런 거 안 해도 우리는 군말 없이 이마진과 싸우고 있었잖아요.”
“모모타로스, 오랜만에 똑똑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류타로스가 삿대질을 하며 단정지었다. 그에 모모타로스가 발끈했다.
“뭐라고 했어, 꼬맹아!”
모모타로스가 류타로스에게 달려들려던 순간이었다. 그들의 옆으로 키보가하라를 구경하러 온 듯 거대한 망원경이 담긴 가방을 짊어진 청년이 지나갔다. 그는 이마진들의 모습에 잠시 당황한 것 같았다. 이마진도 그의 모습에 당황했는데, 그의 소매 사이로 모래가 잔뜩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내 청년은 넋이 나간 듯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바닥에 가득 떨어진 모래가 조류 형태의 이마진을 만들었다. 튀어나온 이마진도 또한 당황했다. 그러나 숙주와는 다르게 모모타로스 일행을 보고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는 풍경을 잠시 훑어본 뒤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잘못 왔다!”
조류 이마진은 자신의 숙주를 다시 비집고 들어갔다. 남은 이마진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잠시 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뛰쳐들었다. 청년의 머리에 카드를 대고 이마진이 도약한 시간을 확인한 후 덴라이너를 불렀다. 타율 높은 감이 좋지 않은 전망을 내놓았다. 달갑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들은 서둘러 조류 이마진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불행인지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이마진을 따라 도착한 곳은 키보가하라였다. 놀랍진 않았다. 이마진의 “잘못 왔다”라는 말은 보통 공간이 아닌 시간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도착하였을 때는 조류 이마진이 이미 땅을 파낸 후였다.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손에 든 채 말이다. 모모타로스는 달려오던 다리를 급히 멈추느라 다시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겨우 균형을 잡은 그가 칼을 놓고 양손을 번쩍 들었다.
“항복!”
뒤따라온 이마진들도 비슷하게 양손을 들었다. 우라타로스는 진정하라는 듯 한 손을 내밀었다.
“침착해. 어떤 이유로 그것을 찾은 거지?”
조류 이마진은 타임캡슐을 총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마진들을 향해 겨누었다. 여기서 코웃음을 칠 자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동은 효과가 매우 좋았다. 이마진들은 마치 총에 겨눠진 것처럼 잔뜩 긴장하여 황급히 물러났다.
“다가오지 마! 이, 이건 내가 맡았다.”
“그거 가지고 뭘 할 생각이야! 돌려줘!”
“추억도!”
조류 이마진은 해체된 맥락의 단어로 답했다. 뜻밖의 단어가 튀어나온 터라 우라타로스는 그것이 일종의 주문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했다. 뒤에 이어진 말으로 그들은 겨우 조류 이마진의 말이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었음을 깨달았다.
“추억도 기억이다. 아무리 왜곡되고 미화된 추억이라도 그것이 곧 시간이 된다고!”
기억이 곧 시간이라는 것은 시간의 운행에 한 번이라도 기여를 한 자라면 익히 알고 있을 명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추억에까지 적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조류 이마진의 말처럼 추억 역시 미화되었을지언정 기억이므로 그의 주장은 타당했다.
“덴오가 너희들을 추억하며 남긴 것이 이렇게 선명하다면, 너희는, 너희는 자꾸 우리들 앞에 나타나 우리를 방해할 것 아니야!”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돌발적이었기 때문에 미처 저지할 틈조차 없었다. 조류 이마진은 발악하듯 타임캡슐을 하늘 높이 던졌다. 모두가 그것을 붙잡는 대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동안, 조류 이마진은 입에서 불을 뿜어 타임캡슐을 싸그리 태워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들의 상황 판단은 더뎠다. 이전에 무엇이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재가 흩날렸다. 그 광경이 지고 있는 해와 맞물려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모모타로스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다른 이마진들도 각각의 방법으로 경악을 표현했다. 그들은 재를 잡으려는 의미 없는 행동을 몇 번 반복했다. 그것의 무용을 깨달은 직후 그들의 분노 어린 시선이 어디를 향했을지는 자명했다. 섬뜩한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아낸 이마진은 되려 당당하게 맞섰다.
“이제 너희가 우리를 방해할 일은 없겠지.”
“와 그래 찾아도 안 보이나 캤드만, 니였나?”
“병아리 새끼인 줄 알았더니 불사조였군.”
조류 이마진은 그 말에 대답하듯 본인의 깃털을 불살랐다. 불은 신기하게도 점화 과정 없이 붙어 자연발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비한 광경에도 그들은 불의 근원에 대해 관심을 할애할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은 저놈을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게 해치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 관심을 쏟는 데에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 이마진은 명색이 불사조를 표방한지라 약한 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쪽은 머릿수가 넷이었던 데다가 잠도 못 자고 발로 뛰어 겨우 찾은 것을 잃어버린 분노가 상당히 컸다. 그것이 마지막조차 지키지 못한 가장 친한 친구가 남긴 것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불사조의 불은 쉽사리 꺼졌다. 아무래도 표방뿐이어서 불사 능력까지 갖추진 못한 듯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넷의 분노는 다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들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미 모래로 돌아간 이마진을 쿡쿡 찔렀다.
붙들고 있던 분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가라앉았다. 그러자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슬픔을 넘은 탈력감이 찾아왔다. 차라리 계속 분노하고 있는 편이 나았을 법했다. 류타로스는 떨어진 재들을 그러모아 보려고 했으나 그것이 될 리가 만무했다. 아이의 응석과도 같은 행동에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의 입 안에 쓴맛이 퍼져나갔다. 그러다 류타로스는 애써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 모은 재를 마구 흩트리고는 말을 꺼냈다.
“저 녀석이 했던 말 말이야, 우리가 저 녀석들을 더 이상 방해할 일 없을 거라는 말. 그거 무슨 뜻일까?”
분노와 슬픔에 가려져 있던 논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라타로스가 조용히 말했다.
“료타로가 더 이상 우리를 기억하지 않으니 우리도 사라진다는 이야기 아닐까.”
둔탁한 충격이 다가왔다. 지레짐작하고 있었던 킨타로스를 제외한 모모타로스와 류타로스가 우라타로스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죽었잖아요.”
말투가 덤덤했기에 그 말이 담고 있는 충격량은 적었다. 평소의 모모타로스였다면 그 말에 극구 부인하며 왈칵 화를 쏟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순순히 말없이 긍정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점점 잊혀갈 처지고, 결국엔 사라질 거라고?”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원망을 산 것일지도 몰라요.”
우라타로스는 엉뚱한 대답을 했고, 그것이 반대로 대답이 되었다. 류타로스가 울먹였다.
“나―나는 죽기 싫어…….”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밤은 더욱 깊어졌다. 여기에서도 베텔게우스는 멀쩡히 자신의 빛을 보내고 있었다. 덴라이너를 타고 오랜만에 밀크 디퍼를 들렀을 때부터, 친구의 비보를 들었을 때부터 저것은 줄곧 그들을 따라다녔다. 이젠 염증이 날 지경이었다. 망할 별, 망할 적색거성, 망할 초신성…….
“……얘들아?”
가슴이 저릿했다. 그들에게 심장이 있었다면 저 바닥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시리도록 익숙한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제 들었던 것처럼 생생했다. 척수 반사처럼, 그들은 자신의 등 뒤에 난 목소리의 근원을 돌아보았다. 이마진들이 바닥에 주저앉지 않은 것은, 그럴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료타로!”
이제는 중년이 되어 세월을 가득 지닌 얼굴을 한 노가미 료타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료타로가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이마진들은 그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이마진에게 둘러싸여 호흡곤란에 빠진 료타로는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오려 했으나, 말없이 그를 포옹하고 있는 이마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 감내하기로 했다. 이마진들이 소중한 친구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몇 초 지나지 않은 시점이므로, 그들은 빠르게 료타로에게서 멀어졌다. 숨을 정상 궤도에 되돌려놓은 그가 자신의 첫 말을 골랐다. 언제 왔냐고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여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물어봐야 할까?
“너희는, 미래에서 왔지?”
료타로가 최종 결정한 서두는 이마진의 정곡을 훌륭하게 찔렀다.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료타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지었다. 맹하고 느린 친구는 이런 곳에서는 또 속일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웠다. 그것은 일종의 다정함이었기에 그의 약함은 또한 강하기도 했다.
“어떻게 알았어?”
“엄청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굴잖아. 너희의 시점에선 내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 말에 이마진들이 숙연해졌다. 료타로가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떤 일로 왔어? 이마진을 따라온 거야?”
“그게…….”
어떤 말을 전해줘야 할지 몰랐다. 애초에 이렇게 과거의 인물을 만나서 미래에 일어날 자초지종을 설명해줘도 되는 것인가? 아무리 특이점이라 할지라도? 이럴 때에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인물은 우라타로스였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우라타로스는 동료들의 시선을 느끼고 한번 한숨을 쉰 후 앞장서서 말했다.
“응, 이마진을 따라서 왔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료타로는 여기에 왜 온 거야?”
“그게, 여기에―”
료타로는 대답하려다 돌연 말을 잘랐다. 굳어버린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이마진들은 의문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과하게 당황하여 허둥거리며 말을 이었다.
“설마 너네 타임캡슐 찾으러 온 거야?”
이렇게 물어본다면 부정할 수 없었다. 우라타로스는 잠시동안 둘러댈까 고민하다가 사실을 털어놨다.
“사실은, 그래. 네가 죽고 나서 타임캡슐 이야기를 들었는데, 키보가하라는 이미 재개발된 후였어. 할 수 없이 과거로 돌아와서 찾고 있었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타이밍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거 어제 묻었거든.”
운이 좋다고 말하는 료타로는 퍽 어색했다. 이마진들이 없는 동안 그의 평가가 전복되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색할 뿐이지 이마진들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이 묘한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은 운이 좋았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거기에 넣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온 거야.”
료타로가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그가 무언갈 쥐고 있었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작은 망원경을 쥐고 있었는데, 사쿠라이 유토가 쓰고 있었던 것―그러니까 밀크 디퍼에 장식되어 있었던 것과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곧 베텔게우스가 초신성 폭발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유토가 만날 때마다 베텔게우스 이야기만 해대서……. 천문학자의 ‘곧’은 믿을 수 없지만, 너희가 돌아왔을 미래에는 그게 터졌을지도 모르니까 이것도 넣어두려고 했지.”
모모타로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타임캡슐을 찾는 일련의 과정에서 베텔게우스가 그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분명했다. 그는 제 감정을 누르며 물었다.
“왜 하필 베텔게우스야?”
모모타로스의 적의를 느낀 것인지 그는 가만히 웃었다.
“베텔게우스랑 지구가 약 500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내뿜은 빛이 500년이나 걸려서 우리에게 닿는 거야. 본인이 그 빛을 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쯤에야 우리는 그 빛을 볼 수 있어. 이것을 묻으면서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더라고. 너희가 죽지만 않았다면― 내가 이것을 묻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을 쯤에라도 너희에게 이것이 닿았길 바랐어. 닿았으니 다행이다. 조금 창피하니까…… 그 타임캡슐은 나 없는 데에서 열어주면 안 될까?”
안타깝게도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타임캡슐은 영원히 이마진들에게 닿을 수 없다. 그것은 방금 전 불타올라 산산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류타로스는 입을 우물거리다 말을 꺼냈다.
“미안해, 료타로. 우리 이제 곧 사라질지도 몰라.”
료타로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그는 당황한 채 물었다.
“왜, 왜 갑자기?”
“네가 남겨놓았던 타임캡슐, 방금 이마진이 와서 부숴버렸어. 네가 죽은 데다가 네가 남긴 추억도 이젠 사라졌으니까 우리는―”
“―그게 왜?”
료타로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덴오를 그만둔 지 지나치게 오래된 탓에 잊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류타로스는 어렵다는 투로 더듬더듬 설명했다.
“그 말 잊지 않았지? 기억이 곧 시간을 만든다는 이야기. 우리는 네 기억을 토대로 살고 있으니까……? 네가 없다면 우리는…….”
류타로스는 자신의 주장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료타로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며 가지고 온 망원경을 펼쳤다.
“그러니까. 분명 처음에는 내 시간을, 내 기억을 토대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추억은 분명 나 혼자서 만든 게 아니야. 그것을 너희들도 기억하고 있잖아. 그렇다면 그것은 너희들의 시간이 되겠지. 추억은 물체에 담기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론 너희들의 기억 속에도 있을 테니 말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아마도. 실제로, 지금 너희들 괜찮잖아. 안 그래?”
아. 킨타로스는 탄성을 내며 본인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전의 사라져갈 때처럼 몸이 점점 모래로 바뀌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선명했다, 추억이라는 시간 위에서 견고하게 말이다. 료타로는 그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면서 그들에게 고유한 시간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몇십 년의 익숙함 속에서 잊고 있었다. 640광년 지나 본인도 잊을 즈음 인류에게 닿는 베텔게우스의 빛처럼, 그들은 이제야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시간의 본질을 깨달았다. 더 이상 그들에게 타임캡슐 안에 있었던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비로소 사실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역할을 다했다. 료타로가 준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었다.
“타임캡슐이 망가졌다니 아쉽지만, 너희들에게 이것은 전해줄 수 있으니 만족할래. 얘들아, 같이 별 보지 않을래?”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거절할 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마진들은 옹기종기 모여 망원경에 제 눈을 들이밀었다. 모두가 동시에 별을 보고 싶어 했으므로 네 머리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고, 이마진들은 각기 제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들은 깜깜한 시야 앞에서 색다른 별을 봤을 것이다.
자신의 머리를 가열차게 비비던 모모타로스가 료타로에게 다가왔다.
“료타로.”
“응.”
“우리가 있던 시간에 말이다, 베텔게우스가 터져있더라?”
료타로의 눈이 커졌다.
“진짜? 어땠어?”
모모타로스가 사납게 웃었다. 기분이 좋다는 표지였다.
“예쁘더라, 엄청.”
밤하늘에 아직 폭발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베텔게우스가 반짝였다.